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의 몸은 불편한 것보다는 편안한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추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갔던 선각자와 선지자는 일순간의 안일과 편안보다는 역경과 고난 뒤에 도래될 참된 ‘평안’을 내다보고 그것을 준비했다.
‘편안’과 ‘평안’은 얼핏 비슷한 것 같으나 실상 그 의미가 매우 다르다. 편안은 외부환경이 가져다주는 느낌의 상태지만, 평안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상태를 일컫는다. 예를 들어 푹신한 침대에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으면 몸은 편하다. 그러나 마음속에 온갖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하다면 결단코 평안한 상태가 될 수 없다. 반면 힘든 가사노동이나 직장일로 몸은 고되지만 그 사람에게 뚜렷한 꿈과 소망이 있어, 마음만은 평안하다면 과연 어느 쪽이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성경은, 육체의 편안과 마음의 평안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쪽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을까.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누가복음 10:5)
세상에는 여러 인사말이 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식사하셨습니까’.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여러 인사말들 가운데 최고의 인사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다. 바로 이웃에게 평안을 빌어주고 평안을 누리도록 깨우치고 도와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평안’이라는 것은 세상에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욥기 22:21)
우리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명예나 지위나 부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며 하나님과의 유대를 중요시 여겼다(로마서 8:5~6).
그렇다면 우리의 생명과 평안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신 것은 무엇일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요한복음 6:47~48)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예수님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 생명을 위해, 유월절을 허락하셨다. 곧 유월절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요, 더불어 마음의 평안을 얻고 영생의 축복까지 덤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돈 많고 부자로 사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오복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도 마음엔 천석꾼, 만석꾼처럼 걱정이 가득하다면, 100세도 누리지 못하고 질병과 고통으로 육신이 소멸된다면, 과연 그들을 잘 사는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근본 영혼의 평안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한시적인 삶으로 막을 내린다면 그것은 잘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당장 내 상황이 편안하지 않다고 해서 슬퍼하고만 있지 말고 ‘유월절’을 지켜 내 마음에 진정한 평안을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출처 : 패스티브
인류인생들에게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안에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답글삭제마음의 안정을 찾기위해 종교를 찾는 경우가 많은데 진정한 평화는 오직 새 언약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라 할 수 있지요.
답글삭제‘유월절’을 지켜 내 마음에 진정한 평안을 찿아야죠^^
답글삭제그럼요. 모두 유월절을 지키고 하나님 주시는 평안 속에 보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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